2021. 8. 15.
갑자기 진정성에 대하여 난데없는 고찰을 하게 되었다.
요새 미술관이며 카페며 식당이며 진정성이 없다는 푸념을 많이 듣는다. SNS가 과도하게 활발해지면서 실제로는 볼품이 없는데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 음료, 식사와 분위기를 조성해 놓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SNS가 과도하게 활발해지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어딘가 피상적으로 변해간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고 싶어서 만나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진찍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만나는 것 같다는 식이다.
그런데 어떤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을 가진 A는 제복이 마음에 들어서, B는 해외여행을 좋아해서, C는 키가 크고 예뻐서 그 직업을 선택했을 수 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A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B는 성적이 잘 나오고 똑똑해서, C는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결혼을 잘 하기 위해 그 직업을 선택했을 수 있다.
요가가 취미인 A는 요가가 재미있어서, B는 몸매를 예쁘게 유지할 수 있어서, C는 요가 선생님과 사랑에 빠져서. 요리가 취미인 A는 요리가 재미있어서, B는 아들에게 새로운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것이 뿌듯해서, C는 맛있는 요리를 한 다음에 줄리 앤 줄리아의 주인공처럼 블로그에 기록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수영이 취미인 A는 수영이 재미있어서, B는 일이나 모임을 떠나 수영장 물 속에 혼자 머리를 파묻고 있을 때 모든 걸 잊을 수 있어서, C는 원래는 어깨가 엄청 좁은데 수영을 하니까 어깨가 점점 넓어지는 효과를 보아서.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인 A는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B는 영화의 영상미나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C는 적당한 돈과 시간을 쓰면서도 감상이 끝나고 친구와 식사에 맥주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당해서. 골프가 취미인 A는 골프가 재미있어서, B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골프장에 가고 같이 필드를 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C는 비싼 골프 옷을 사서 입은 뒤 비싼 골프장에 가서 바람을 쐬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 취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지 어떤 이유가 있어서 하는 행동이 과연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거짓말이나 가식이 결코 아니다.
만약 A가 ‘요가가 재미있어서’ 요가가 취미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몸매를 예쁘게 유지하는 것을 원하고, 그러기에는 요가가 제격이어서’ 요가가 취미라고 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A에게 진정성 있는 행위일 것이다. B가 ‘참치 포케가 맛있어서’ 참치 포케를 좋아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참치 포케는 영양성분이 훌륭하고 가격도 적당해서’ 참치 포케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진정성 있는 취향일 것이다. C가 ‘독립 영화를 좋아해서’ 독립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장소가 필요한데 독립 영화관에서 만원을 내고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은 그러기에 아주 적당해서’ 독립 영화관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라면, 역시 그 나름대로의 진정성 있는 취미일 것이다.
결론이든 이유든 차등을 두어서 진정성 여부를 가르는 것은, 서로의 다른 가치관을 폄하하고 등급화하는 것이 되어 버릴 수 있다.
커피는 너무 맛이 없지만 가게 분위기가 사진을 찍기에 아주 좋은 카페는 진정성 없는 것일까?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은 사람에게는 꽝이겠지만 똑같이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카페를 찾은 사람에게는 제격일 것이다. 전자가 ‘이 카페에는 진정성이 없어!’라고 한다면, 그건 맛있는 커피를 팔기 위해 열심히 연구해서 카페를 창업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예쁜 분위기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공략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카페를 차리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는 뜻이겠다. 또는 맛있는 커피를 먹는 것보다 예쁜 분위기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카페를 찾는 행위부터가 진정성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 생각부터가 주관적 편향이다.

무엇이든 좋아하면 그만인 것도 같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등산 모임을 좋아한다고 해서 등산 모임을 좋아하는 마음의 진정성이 낮다고 할 수 있을까?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와서 배우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배우자를 좋아하는 마음의 진정성이 낮다고 볼 수 있을까? 이건 배우자가 요리나 노래를 잘해서 좋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외모가 잘생겨서가 이유라면, 이거야말로 한 순간인데, 취미나 취향, 선택의 이유가 무엇이든지 그 이유로 인한 마음이 진짜면 그건 진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휴식 시간에 같이 만나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기 좋아서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이나, 대학교 공강시간에 혼자 밥 먹기 싫어서 밥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이나, 가고 싶은 맛집이나 여행지를 가는 등 데이트를 하기 위해 연인 관계를 맺는 것이나,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우는 등 함께 일생을 경작하기 위해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를 이용하고 도구화하는 개념이 관계 내에 개입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진정성을 생각한다면 결국 모든 관계나 행위 등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려워질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언지 알고, 그걸로 다른 모든 것도 좋아한다면 그 다른 모든 것도 진정해지는 마법!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서 선택하기 어렵다고 갈팡질팡하는 순간들이 많지만, 이때 진짜 백 퍼센트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순간들, 좋아하는 식당이나 지역,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렛대로 그런 어려운 선택을 해나가는 것도 현명할지 모른다.
한편, 성격이 급하고 변덕스러운 나는 ‘꾸준함’과 ‘진정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이 드는데(꾸준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는 것인지의 화두), 이건 좀더 생각을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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