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여야 시간이 빨리 갈 때가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말 그대로 '좀'이 쑤시기 때문이다.
이때. '좀' 움직여라 누가 잔소리를 할 때,
어라 갑자기 '좀'이 쑤시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잔소리'가 흥미롭기 때문일까?
자질구레한 것들은 늘 흥미롭다.
잔걱정을 하는 건 습관이다.
그건 일상이 무료할 때마다 일어난다.
기필코 중요한 걱정을 할 것이 없을 때
그 자리를 비집고 자질구레한 것들이 고개를 내밀고 나요 너요 하는데
그게 참 귀엽다.
그 순간에도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는 못하지만
어련히 시간이 한두 시간만이라도 지나고 나면 아이고 '귀엽다', 하는 것이다.
'귀엽다'는 건 그야말로 '재밌다'
그래서 '잔소리'는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런데 늘 흥미로운 건 아니고, 당연히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움직이지 않아도 '좀'이 쑤시지 않을 때이다.
세상 모든 게 아름답고 마음이 그대로 편안할 때.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고 느긋할 때.
그럴 때는 일상이 무료할 때와 다르게 자질구레한 것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중요한 게 내 마음 안에 있는 것도 아닌데.
중요하든 자질구레하든 내 안에 꼭 무언가 들어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니까 마음 안에 무언가 들어와 있지 않고, 그래서 비어 있는데.
비어 있는 그 순간이 불안하고 허전하고 배고플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그게 참 가볍고 편안할 때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평소에 늘상 오전 11시 30분이면 배가 고프다.
그건 아침으로 별다른 것을 먹지는 않고 오전 7시쯤 일어나자마자 아몬드 한 알, 아오리 반 개 정도만 먹기 때문이다.
출근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사무실 어딘가에 늘 숨겨져 있기 마련인 과자 몇 개를 집어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전 11시 30분이면 배가 고파 죽겠다.
그래도 나는 우선 운동을 간다.
그건 말 그대로 강박 직전에 가까운 습관이다.
나는 '습관'을 좋아한다.
습관은 나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서 증발해 버리지 않도록 나를 일상의 대지 위에 붙잡아 두는 '추'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한 생활에는 하기 싫은 것도, 특별한 증오나 반발 없이 곧잘 해나가야 하는 시간의 단편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추'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무게의, 너무 가벼우면 의미 없고, 너무 무거우면 고통스러워서 하루로도 버거우므로 적당한 무게의,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무게여야 좋다.
그런데 가끔, 나는 습관을 잊어버린다.
그건 내가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아도 될 때이다.
예컨대 휴가가 있다. 1주일의 휴가가 주어졌을 때, 나는 갑자기 오전 11시 30분에도 배가 고프지 않다.
오후 1시 30분 쯤 느즈막히 브런치 가게에서 샌드위치 반쪽만 먹어도 아주 좋다.
다른 한편으로, 배가 고프지 않아도 오전 10시에 운동가지 않고 곧장 호텔 조식 뷔페를 푸짐하게 먹어야 한대도 좋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아주 재밌다.
그건 내가 '추' 없이도 무거울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아주 가벼워서 그순간 그대로 증발되어도 좋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있어서 일거다 아마도.
그런데 만약 휴가가 아니라 1주일이 아니라 영원한 휴가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면 또 가벼워서 증발될 거라는 불안에 어느 정도 평소보다도 더 무거운 '추'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또 어딘가 소속되어 일부러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적당한 고통이 반복되는 시간의 단편들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삶에 '잔소리'가 아예 영원히 필요 없는 경우는,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마 내가 아예 영원히 혼자 사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무한한 자유보다는,
적당한 구속과 제약, 자원의 부족이 주는 불안함과 안도감의 반복, 밀물과 썰물, 고통과 평안, 그 모든 것들의 반복 그게
내 삶을 좀더 비옥하고 재미지고 흥미롭고 귀엽게 만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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