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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1. 7. 10. (土) 긍정적인 예감

by 오하시스 2021. 7. 10.

2021. 7. 10.
몸값이 비싼 돼지보다 작고 귀여운 돼지가 되고 싶다. 몸값이 비싼 돼지도, 작고 귀여운 돼지도 잡아 먹힐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로 행복한 위치에 있다. 특히 작고 귀여운 돼지는 주변으로부터 예쁨을 받으면서 윤택한 삶을 유지하고 주인에게도 금전적인 부담을 주지도 않으면서 존재만으로 행복을 선사해 주기 때문에 아주 복스러운 돼지이다. (이 경우 주인은 이미 돼지와 사랑에 빠졌기에 돼지를 죽여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하였을 것이다) 제일 위험한 것은, 몸값이 그리 비싸지도 않은데 먹음직스럽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돼지이다. 사료를 많이 먹지도 않는데도 살이 쉽사리 오르는 돼지 종자는 통상 그에 비례하여 몸값도 오르기 마련인데,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도 살찌는 능력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해내는 돼지는 본인이 살찌는 과제를 단기간 내에 그토록 훌륭하게 해냄과 동시에 잡아 먹힐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그 돼지의 친구라면, 먹는 게 행복하고 즐겁더라도 눈치를 봐서 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나누어 먹고 대신 운동을 좀 더 하라고 조언해 줄 것이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몸값이 비싸지도 않은데 작고 귀여운 돼지가 되기보다 살찌는 능력을 타고난 돼지라면 이러한 조언을 지키는 게 오히려 본인에게 불행할 수도 있어서, 이러한 경우 차라리 본인에게 행복한(많이 먹고 덜 운동하는) 삶을 살되, 빨리 죽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어제 옆 방 변호사님과 옆 방 변호사님의 비서님, 나의 비서님과 나, 이렇게 넷이서 회사 근처 아주 아주 아주 맛있는 스페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옆 방 변호사님의 비서님은 올해 입사하신 1996년생 신입으로 1993년생이신 나의 비서님의 직속 후배이시고, 옆 방 변호사님은 1990년생으로, 1993년생인 나의 직속 선배이시다. 연차도 모두 다르고 하는 업무도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금요일 점심에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작고 귀여운 돼지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예컨대 다같이 잘 염장된 스페인 햄을 잘려진 바게트 빵에 올려 한 입 물고 우물 우물,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금요일 점심 시간의 여유로움에 대하여 행복해 하면서도, ‘요새 일이 많지 않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이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일종의 징크스인데, “요새 일이 많지 않네”라고 누구에게든 말을 꺼내면, 그곳이 회사 근처이든 아니면 어디 멀리 있는 장소이든 상관없이 마치 주변 어딘가 은밀한 장소에 회사에서 도청장치라도 심어 놓은 것처럼 마법처럼 새로운 일이 배정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직장인들 모두 작당하고 ‘말’ 조심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회사가 쉽게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혼잣말, 심지어는 “요새 일이 많지 않네”라는 말 풍선이 아닌 ‘요새 일이 많지 않네…’라는 생각 풍선만 그려도 그 틈을 노리고 새로인 일이 ‘생각’해버린 자에게 배정되어 버린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일명 생각 금지령! 하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어제 점심식사를 같이 한 옆 방 변호사님과는 지난 주에도 멤버와 장소를 조금 달리 하여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서촌의 함박스테이크 맛집에서 모두들 트리플 치즈 함박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와중에 변호사님은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드시며 최근 읽고 계신 책이 재미있다고 추천을 해주셨는데, 제목은 ‘미드나잇 다이어리’였다. 우울증에 빠진 작가가 우울증에서 벗어나 책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책의 주인공도 우울증에 빠져 죽기 직전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라는 신기한 세계에 방문하여 자신이 선택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소개 받아 사는 것을 더욱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내용도 무척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에, 냉큼 이북을 구매하였다. 주인공은 바라던 것이 엄청 많았는데 그것들을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모두 이루지 못하였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젊은 나이에 자살을 꿈꾸게 되었다. 또 주인공은 인생공포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자신이 그간 잘못된 선택을 했기에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여 앞으로도 똑같이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이고 이로써 삶은 더욱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속단하고 있었다. 가령 주인공의 사고 흐름은 아래와 같다.  

“원래 우주는 카오스와 엔트로피를 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열역학의 기본이다. 어쩌면 존재의 기본일 수도 있다. 해고되면 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 “노라는 상황이 더 나빠질 거라는 강한 – 사실은 ‘정확한’이었지만 – 예감이 들었고, 비를 피하기 위해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라면 답을 알 수도 있겠지만, 닭이 먼저일지 달걀이 먼저일까 정신과 의사가 아닌 나로서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예견한 자에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날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사람들도 비가 오는 것을 예견하는 새들처럼 동물의 육감으로 이를 용케 예견해내는 것일까? 왠지 정신과 의사라면 우울증 환자에게 전자가 답이니 섣불리 부정적인 예감은 하지 말라고 말해줄 것 같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자와 후자의 중간 어디쯤이 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이 존재하고, 한 사람만이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다수의 사람이 존재하고, 다수의 사람이 각자 자신의 또는 서로의 미래를 예측하므로, 이때 설령 미래가 객관적으로 고정된 개념은 아니더라도, 결국 다수의 예측(이를 정치, 사회, 경제적인 환경 요인이라고 칭해볼 수도 있겠다)이 서로의 미래에 영향을 미쳐 어떤 개인의 예측만이 오로지 개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이 잘 안 풀린 사람에게 그러게 네가 부정적인 예감을 한 탓이라고 타박할 수는 절대 없을 것이고, 아무리 나는 좋은 일만 일어날 거라고 백 번 긍정적으로 예감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주변 모든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예감한다면 부정적인 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높을(또는 높아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100마리의 새들 중 51마리 이상의 새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비가 올 객관적인 확률을 예측할 수 있듯이, 세상 사람들 과반수의 생각을 분석하여 객관적으로 미래를 예측해볼 수도 있겠다. (정녕 코로나바이러스도 계속될 것이라는 과반수 이상의 불안한 예견이 모여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다만 완전히 후자는 아니고(미래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전자와 후자의 어디쯤이니까(여러 가지 변수로 바뀔 수 있는 개념이니까), 만약 세력을 펼쳐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진짜 미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작고 귀여운 예를 들자면, 가령 직장인들이 ‘요새 일이 많지 않네’라고 생각하는 즉시 새로운 일이 뿅 하고 생기는 이유는, 그것이 ‘앞으로는 일이 많아지겠지’라는 불안한 예견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에 만약 생각을 달리 하여 ‘나는 항상 일이 많지 않은 여유로운 사람이지’라는 생각을 유지하고, 더불어 세상 사람들 모두(또는 과반수)가 ‘000는 항상 일이 많지 않은 여유로운 사람이지(그렇지만 참 돈은 많이 벌지 부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000에게는 항상 일이 많지 않은 (그렇지만 돈은 많이 버는) 여유롭고 풍족한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각자 자신이 예측 불가능성을 불러 일으키는 태풍의 핵(!)이 되고자 하는 욕망, 다른 사람에 의해 조정을 당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개척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인은 작고 귀여운 돼지가 되기보다 크고 멋진 돼지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작고 귀여운 돼지가 되기를 바라는 타인을 위하여 함께 작고 귀여운 돼지가 되기를 바라주는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어디 한번 작고 귀여운 돼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반대의 예측을 감행하고 싶은 장난꾸러기 내지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것이다(서로 너는 작고 귀여운 돼지, 너는 크고 멋진 돼지가 되기를 사이 좋게 바라줄 수도 있겠지만, 이때에도 배신 행위를 감행하고 싶은 욕망과 서로 이를 실현할 위험에 언제든지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청개구리들의 줄다리기를 고려하면, 결국 미리 어떠한 방향을 특정하여 청사진을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그대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그대로 흘러가지 못하였을 경우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불행해 하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편(운명주의)이 적어도 본인이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겠다. 다만 만약 자신이 운명주의를 뼛속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천적으로 예측 가능한 착하고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자신이 바라는 바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어느 정도의 불행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인생의 숙제로 남는다.

그래도 그래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끝나는 것이 정말로 모두에게 좋으니까, 일단 그 바람대로 계속되지 않고 곧 끝나리라는 긍정적인 예감을 유지해보겠다. 구체적으로 다음주였던 친구의 결혼식이 2022. 1. 15. 로 미루어졌는데, 이 날은 내 생일이기도 하니까, 2022. 1. 15. 에는 완전히 끝나 사람들이 패션으로 마스크를 끼고 다닐 것으로 예상해본다. (2022. 1. 15. 에 이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짜릿해 할 것으로도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