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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1. 6. 26. (土) 고생한 윗사람에게

by 오하시스 2021. 6. 26.

2021. 6. 26.
4시간 전까지 친언니 생일 기념으로 보깔리노(영어에서 자음이 두개 들어가면 사실 된소리로 발음해야 한다)에서 포식을 하느라 일기가 늦었다. 에피타이저로 멜론과 바닷가재, 햄, 메인으로 또다시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 피짜, 노란 토마토와 잣페스토가 들어간 파스타, 문어가 들어간 파스타, 디저트로 자몽케이크가 나왔다. 식전빵도 두개나 나왔는데 아티초크가 올려진 크림치즈가 곁들어 나왔다. 무난한 치아바타(이탈리아어로 슬리퍼!)와 토마토, 올리브가 들어간 야채빵을 올리브유랑 크림치즈에 찍어 먹으니 환상(ㅠㅠ). 아웃백 시절부터 나는 식전빵과 스프를 가장 좋아해왔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기에 망정이지, 이제는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식전빵을 몽땅 먹어치워서 메인을 못 먹는 실수는 하지 않는다.

언니에게 나는 아직 생일선물을 주지 못하였는데, 그건 언니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원하는 생일선물을 콕 찝어서 주문을 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 언니가 내게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그건 언니가 원하는 게 없기 때문은 절대 아닐 것이다. 언니는 욕망의 화신이어서 항상 위시리스트가 빼곡한데, 가령 내가 '나를 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 언니에게 요즘 무슨 가방을 사면 좋을까, 물어보면 언니는 본인의 위시리스트 중에서 나에게도 괜찮아 보이는 가방의 브랜드 명과 가격대를 엄선하여 카톡으로 보내준다. 그러면 나는 엄선된 리스트를 보고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골라 백화점에 가서 나를 위해 선물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와 같은 경우, 언니는 갖고 싶은 게 너무 많거나 아니면 갖고 싶은 여러가지 물품들 중 갖고 싶은 순위가 비슷해서 아직 무얼 주문할지 결정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섣불리 언니에게 어울릴 만한 것을 임의로 골라 선물해버리면, 정작 언니의 빼곡한 위시리스트에서는 아무런 것도 지워지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달리 부모님은 언니에게 선물을 하였다. 그건 언니가 부모님께는 주문을 한 탓인데, 꽤나 고가의 목걸이라서 내게는 감히 요청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문과 별개로, 부모님은 언니에게 꽤나 비싼 청소기도 선물하였다. 지난주에 언니가 새로운 자취방에 둘 조그만 청소기가 필요하다고 지나가듯이 말한 걸 기억한 것이다. 부모님은 대단하다. 윗사람은 언제나 아랫사람을 '챙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요새 '챙기는' 것의 대단함에 대하여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일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추억이든 경험이든 삼시세끼든 근육이든 시력이든... 챙기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게 된다. 20대에는 챙기지 않아도 풍족한데 30대에는, 40대에는, 50대에는.... 나이가 들수록 챙겨야 할 것도 많아지고 그에 비례하여 챙길 수 없는 것도 많아지기 때문에, 무얼 챙기고 싶은지, 챙겨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길게 보지 않더라도 돌아오는 주마다 무얼 챙길 것인지 생각할 시간도 챙겨야지. (아무튼 챙길게 너무 많다.)

우리 부모님은 언니만 아니라 나도 참 잘 챙기신다. 3주 전부터 나는 본가에 가서 운전 연습을 하고 있다. 3주 뒤에 가계약한 자동차가 올 것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몇개월 전 전문선생님으로부터 5회 정도 운전 연수를 받기는 하였지만, 좀더 말랑말랑한 실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시 한 번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시간은 전문 운전 연수와 마찬가지로 약 2시간, 코스는: (A) 올림픽 공원 주차장 위주 약 2바퀴, (B) 올림픽 아파트 주차장 위주 약 2바퀴, (C) 올림픽 아파트 주변부 약 2바퀴, (D) 올림픽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광화문까지(D는 오늘 추가된 난이도 상 코스)로 이루어진다. 생각보다 운전은 참 재미있다! 반복과 비반복 사이의 그 어디쯤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좌회전은 기본적으로 신호등에 의존하여 엄격히 해내야 하는 반면, 우회전은 신호등에 구애 받지 않고 눈치껏 할 수 있다(또는 해야 한다). 걷는 것만큼 자유롭지는 않지만(걸을 때에는 신호 단속 카메라가 없다), 그만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장소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는 점(걸을 때에는 내 방을 같이 움직일 수 없지만 차를 탈 때에는 나와 같이 움직이는 자동차 내부를 마치 방처럼 사용할 수 있다)에서 참 편리한 운송수단임에 틀림 없다.

오늘은 위 (D) 코스가 추가되어 운전 연습에 약 3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시간 동안 아버지는 조수석에, 어머니는 뒷좌석에 앉으셔서 각종 지침과 훈계와 꾸지람과 잔소리를 주시는 역할을 하시고, 나는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만 한다. 나는 재미있는 운전만 하기 때문에 3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반면, 부모님은 위 역할을 다하시느라 굉장히 지치실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어김없이 오늘도 아버지는 배부른 점심식사를 다하고 나서 내게 '너무너무 고생 많았다. 사무실 안 가도 되면 오후에는 낮잠이라도 한숨 자면서 푹 쉬어라'라고 하셨다. 조금 뒤 밀린 업무를 조금 처리하고, 빨래를 널고, 김장 김치를 담그러 갈 것이기 때문에 푹 쉬지 않을 것이기도 할 뿐더러, 나는 지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께서 더 지쳐 보이셨다. 어머니도 지쳐 보이셨다. 나는 엄마 아빠도 집에 가서 꼭 푹 쉬라고 말씀 드리고 우린 헤어졌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무얼 하는 경우, 윗사람의 역할이 보통 더 지치고 고단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들어 윗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챙김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설프게 운전대를 잡느라 어깨가 아팠지만, 부모님은 운전대도 잡지 않으셨는데 나대신 긴장을 하시느라 어깨가 더 아프신 것 같았다. 물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고, 이때에는 아랫사람의 역할이 더 지치고 고단하기도 할 것이다. 결국 챙기는 사람의 역할이 지치고 고단하다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챙기는 사람과 챙김을 받는 사람이 있을 때, ‘수고했다’거나 ‘고생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챙김을 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아버지는 오늘 내게 ‘고생이 많았다’ 고 하셨지만, 나는 아버지께 ‘고생이 많으셨다’고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주 수요일에도 그랬다. 수요일 오후에는 창원 고등법원에 기일이 있었는데, 나는 서면만 쓰고 시니어 변호사님께서 혼자 기일에 참석하셨던 건이어서 이번에도 시니어 변호사님만 혼자 창원에 다녀오셨다. 서울-창원 왕복만 해도 몇 시간이 족히 걸리기 때문에 기일을 다녀오면 하루가 꼬박 다 지나간다. 그런데도 시니어 변호사님은 그날 다녀오시자마자 변론기일 내역을 정리하여 메일을 주시고, 그날 밤 12시가 다 되어서 변론기일 내역을 다시 한번 수정하여 보내주시면서, 고객에게 보내 드리고, 기존에 정리하였던 메모와 함께 추후 참고서면 작성에 반영해 달라고 말씀을 주셨다. 이번 주 금요일 똑같은 시니어 변호사님과 함께 하는 다른 사건에서는, 예전에 주말에 작성하여 고객께 보내 드린 의견서와 관련하여 청으로부터 과세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시니어 변호사님은 내게 ‘저희가 의견서를 잘 작성해서 과세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오 변호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고 말씀을 주셨다. 나는 수요일 오후에 변호사님께 똑같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지 ‘고생 많으셨습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실 ‘수고 많으셨습니다’는 아니더라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도는 쓸 수 있을까 해서 구글링을 해보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고만 쳐도 이미 ‘고생 많으셨습니다 윗사람’이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검색을 해보았나 보다. 이에 대해 국립 국어원에서는 - ‘고생’도 ‘수고’와 마찬가지 의미이므로 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고통을 받는다’의 뜻을 가진 ‘수고(受苦)’의 어원적인 의미를 고려하여 이 단어를 제외하고 ‘노고’ 또는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의 뜻으로 쓰이는 ‘애쓰다’를 써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쓸 수 있다 - 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전연습을 도와주신 부모님이나 기일에 다녀오신 변호사님께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는 모두 적절치 않게 느껴졌다. 게다가 국립 국어원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보다 일찍 퇴근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안녕히 계십시오’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는데...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무관하게 (사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챙기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저 챙김을 받는 입장에서 챙겨준 사람에게 감사인사에 추가하여 그의 고생을 인정한다는 정도의 인사말을 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때 무엇이 예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속으로 만큼은 고생한 윗사람에게 ‘수고하셨습니다!!고생 참말로 많으셨습니다!!!’고 외쳐 본다. 또한 내가 멋진 윗사람이 되어서 (또는 멋진 아랫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기는 사람이 되는 날까지 ‘수고하셨습니다’ 머신이 되는 것 정도는 국립 국어원에서 널리 허용해 주었으면 좋겠다.